☆ 지난 7월10일 나는 대천을 떠나 가수협회 보령시지부장 백지현님과 부여에 있는 궁남지 연꽃과 주변 풍광을 찾았다.
이곳 궁남지는사적 제135호로서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東南里) 소재. ‘마래방죽’이라고도 한다. 부여읍에서 남쪽으로
약 1km 지점에 있으며, 동쪽에는 초석(礎石)이 남아 있고, 주변에 옛 기와가 많이 산재하여 있다. 또 부근에는 대리석을 3단
으로 쌓아올린 팔각형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음료수로 사용되고 있다. 이 궁남지는 백제 무왕(武王)의 출생설화와도
관계가 있다. 무왕의 부왕인 법왕(法王)의 시녀였던 여인이 못가에서 홀로 살다 용신(龍神)과 통하여 아들을 얻었는데,
그 아이가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한 서동(薯童)이며,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은
무왕이 바로 이 서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이곳이 별궁터였고 궁남지가 백제 왕과 깊은 관계가 있는 별궁의 연못
이었음을 추측하게 한다. 백제의 정원(庭園)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한편, 《일본서기(日本書紀)》에는 궁남지의
조경(造景) 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일본 조경의 원류(源流)가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궁남지는 설화가 하나 있다.
백제 무왕의아버지 즉 법왕(法王)의 시녀를 지냈던 여인이 이 근처 작은 못가에서 홀로 살고 있었는 데, 연못속의 용신(龍神)
과의 정분으로 태어난 아이가 그 유명한 서동(薯童)이다.
그후 서동은 신라 서라벌에서 어찌어찌하여 진평왕(眞平王)의 셋째딸인 선화공주(善花公主)와 결혼을 하게 되고, 백제로 돌
아와 아들이 없던 법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게 되는 데, 그가 바로 무왕이다.
왕위에 오른 무왕은 어머니가 살았던 연못을 대대적으로 공사를 벌인다. 별궁을 짓고 20여리 밖에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물길을 만들고, 주변에는 버드나무를 심고, 연못을 조성하는 데 그것이 현재 의 궁남지인 것이다.
연못 가운데에 있는 정자 의 포룡정기(抱龍亭記) 에 의하면 이렇다.
궁남지(宮南池)라는 이름은 '삼국사기' 무왕초에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물을 20여리 긴 수로로 끌어들였으며 주변 사방에
는 버드나무심고 목 가운데는 섬을 만들었다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포룡정(抱龍亭) 정자 이름도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의 어머니가 홀로 되어 부여 남지(南池) 주변에 살던 중 '교룡이생소명서
동(交龍而生小名薯童) 즉 용과 관계하여 서동을 낳았다는 삼국유사 기록에 바탕한 것이다.
이처럼 백제 무왕 35년(634)에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 궁남지는 서동과 신라 선화공주의 애틋한 사랑의 무대
가 되었던 곳이다. 궁남지 한가운데에는 신선과 불로초 황금으로 된 궁궐이 있는 이상향인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뜬 산이
있었다고 한다.
이곳은 1965년 12월 복원이 시작되어 총 9605평의 연못을 보수하였으며 1971년 12월에 정자를 중건하고 나무다리를 놓아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2005년 5월 고증을 바탕으로 보수 단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궁남지 서동공원 연지에는 수련, 황금연 등 20여종의 연이 형형색색 자태를 드러내고 있으며, 군은 올해 유휴지에 추가
로 원추리, 부초꽃 등 야생화 단지 약 40만㎡를 조성 백제시대 인공정원의 백미를 느낄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다.
☆ 부여는 1400여년전 찬란했었던 백제의 고도로 196점의 문화재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으며 백마강과 낙화암, 정림사지,
궁남지 등 관광사적지와 백제금동대향로 등 국보가 있는 국립부여박물관이 있다. 전형적인 농업군으로 비옥한 토지에서
생산되는 주요 특산물은 백마강수박, 방울토마토, 양송이버섯, 백마강청결미, 표고버섯, 밤, 오이 등이 있으며, 남궁지일원에
서는 제6회 부여 서동 · 연꽃축제를 “부여 서동공원에서 느끼는 꿈 같은 연꽃 사랑이야기”라는 주제로 2008. 7. 18(금)
부터 2008. 8. 3(일)까지 지역특산품판매 및 다양한 이벤트로 문화예술행사를 한다고 한다. -2008.7.12 맹두영-